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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2-15 07:12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1,357  
 

욥은 고난이 계속되자 죽음을 생각합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면 살아갈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의 죽음을 나무의 죽음에 비교합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14:7) 모습입니다.

나무는 밑동이 찍혀도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습니다. 죽은 같아도 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14:10)말합니다.

아무리 젊은 사람도 죽으면 나무처럼 다시 싹이 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욥은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14:14) 말합니다.

죽음으로 고난을 마감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욥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파멸로 이끌어가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시의 눈길로 하나도 빠짐없이 살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14:16) 만보계도 사람의 걸음을 제대로 세지 못합니다. 앉고 일어서고 누움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동작을 아시는데, 욥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낱낱이 헤아리고 계시고, 죄들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여긴 것입니다.

소송을 해도 자신을 변론할 변호인이 없고, 죄만 드러난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구속자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난가운데 있는 이들의 탄식입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도 자녀의 걸음을 세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십니다. 벌주기 위해서 꼬투리 잡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을 아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심 입니다. 불안과 의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