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최근게시물
 
작성일 : 10-10-29 07:05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아니하며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1,321  
 

아합이 전쟁에서 죽은 예후가 왕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예후는 계략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후의 말을 깨달으려면 말의 진의를 깊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이 사마리아에 있을 그들을 지도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합의 아들 가운데 명을 왕으로 세워 무기와 군대를 동원하고 자신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던 왕자들을 모두 죽여 머리를 예후가 정한 어귀에 두었습니다. 예후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 스승이 제자를 죽이게 하는 수를 썼습니다. 아니라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이용했습니다. 레갑의 후손은 보수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알을 반대하며 가나안의 풍습들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예후는 여호나답을 병거에 태워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여호나답의 명성을 권력의 선전수단으로 삼은 셈입니다.

예후는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이면서도 속임수를 썼습니다.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고서는 바알의 제사장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에게 예복을 주어 입게 하여 구별시킨 뒤에 살해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아합의 잔재를 제거하고, 바알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모습이지만 꺼림칙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0:31)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으나 실상은 자기 권력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바알우상을 들여온 아합의 집을 심판하기 위한 열심을 보이나, 진정한 의미에서 우상숭배를 일소하려는 노력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여전히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후는 반만 진실이고 반은 거짓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후처럼 열심을 가진 행동 배후에 좋지 않은 동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