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경건의 대명사와 같은 사람이다. 아브라함과 동 시대의 사람으로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욥기 3장을 보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하는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욥은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5,16) 탄식한다.
두려움과 무서움, 게다가 불안만이 있는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모습인가. 한 날에 모든 재산을 다 날리고 자식들은 죽고, 아내는 떠나가고, 자기 몸은 병들었으나 돌봐줄 이는 아무도 없을 때!
오직 믿고 신뢰하는 이는 하나님 밖에 없는데, 그토록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런 삶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에 대하여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의 믿음이 위태하다. 만일 사람들이 욥에게 주식투자를 했다면 전부 욥의 인생을 끝났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필요충분하다.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게 된다. 그러나 욥의 인내를 아시는 하나님이 놀랍다. 그의 끝을 아시는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가 놀랍다. 거의 신앙을 부인할 뻔한 상황인데도 부인하지 않을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무리 최고의 승부사가 베팅을 한다해도 하나님 앞에 어찌 나설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때로는 욥과 같은 처지에 처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붙잡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