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부활관은 독특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죄악의 몸이 제거되고, 부활의 때에 죄가 없는 육체를 다시 갖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즉 죄인인 사람은 누구나 몸이 썩어 없어지는 과정을 통과하고 부활의 때에 새로운 몸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지인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13:37)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다윗에게 주셨던 시편 말씀의 성취입니다(시16:10).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물로서 가치가 없다면, 흠이 있다면, 그 몸은 썩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흠이 없는 분이셨고, 우리 죄의 형벌을 대속하시기에 완전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다시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신 엔트로피의 법칙의 가장 철저한 적용이 죽음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조금의 부패도 없이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많은 향을 사용했지만 향이 부패를 막는 것은 아닙니다. 냄새만 중화시킬 뿐입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지니셨지만 예수님은 죄의 도구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몸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