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은 곧 단련이다. 불에 달굴 鍊, 때릴 鍛이다. 불에 달구어 때리는 대장간의 한 과정이다. 불에달구고 때려야 제대로 된 도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농기구나 기계처럼 용도에 맞게 일하려면 사람도 연단되어야 한다. 연단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쓸모가 없다.
두 가지 연단이 있다. 하나는 육체의 연단이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딤전4:7)
남자들이 육체미를, 여자들이 몸매를 가꾸는 것이 약간의 유익이 있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육체의 연단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고, 관련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곳곳에 헬쓰장이 있고, 살빼는 프로그램과 처방들과 관련식품들이 즐비하다.
다른 하나는 경건이란 연단이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시간을 떠나 유익하다. 약속된 보상이 있다. 그러나 경건은 구별되어야 하는 종류가 있다. 경건을 가장한 속임수이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딤전4:1,2)
경건에 절제가 필수이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자고 싶은 대로 다 자는 사람이 있다면 경건과 거리가 멀다.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정 반대로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금욕과 현실생활에 대한 부정과 같은 것이다.
원래 좋은 것일수록 유사품이 많기 마련이다. 경건과 금욕은 백지한장 차이일 수 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안먹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다면 금욕이다. 그러나 욕망과 탐심에 사로잡힌 마음 대신에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나아간다면 경건의 모습이 될 것이다.
육체의 연단은 난무하나, 경건은 사라져가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덜 가치있는 것은 바로 효과가 나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건이 없는 육체의 연단이란 엔진없는 자동차일 뿐이다. 심장이 없는 마네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