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한쪽만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짝이 있어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소원도 그렇다. 마음에 강한 소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외짝일 뿐이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모터가 강력한 성능이라하더라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잠19:2)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계속 던지고 있다. '교회는 무엇인가? 왜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어야 하는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기대하시는가?' 바르게 가는 것 대신에 빠른게 가는 것을 좋아하는 시대에서 지식과 소원을 함께 갖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원이 난무하지만 지식이 없어서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게 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잠19:2)
지식 없는 소원을 가지고 마음만 급해서 발이 급하게 나가면 잘못 가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열심히 갔는데 방향이 다르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다시 해야 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지식 없는 소원, 발이 급한 모습으로 잘못 가고서는 결과를 하나님 탓이라고 한다.
소원을 로또처럼 생각해서 아무 글자나 적어내 요행으로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로또 당첨자도 있으니! 그러나 그것을 표준이나 규범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지식을 구비하며 소원을 품는 삶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