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성경을 기록한 시대에는 등불이 빛의 역할
을 했다. 빛을 통해 사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몸에 등불이 있다. [몸의 등불은 눈
](눅11:34)이다. 사람이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을 통해서이다. 눈이 어두우면 아무
리 밝아도 볼 수가 없고 알 수가 없다. 눈이 나쁘면 아무리 외부의 빛을 밝게 해도 사물
구분이 안된다. 눈이 좋은 사람에게는 다 보이지만, 눈이 나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다. 바깥의 빛을 더 밝게 해 달라는 것이다. 빛이 약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신다. 바깥의 빛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의 문제이다. 몸의 등불인 눈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눈에 문제가 있는 시대이다. 주제 사마라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다. 외부의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나쁘다. 사람들은 더 빛을 달라고 표적의 자리를
찾아다닌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지만 더욱 강력한 능력의 표지를 향해
찾아다닌다. 몸의 등불인 눈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도 자꾸 빛이
약하다고 소리치고 있다. 글자가 너무 작다고 크게 하라고 한다. 밖의 빛을 말하지 말고, 자기
눈을 살펴야 한다. 몸의 등불이 어두운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