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분명히 숨겨진 죄가 있고 그 때문이라는 친구들의 정죄를 계속 들어야 했다. 그들은 위로자가 아니라 사단의 도구였다. 욥은 이중으로 고통스러웠다. 도움은 주지 않을망정 말을 지어서 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는가? 잘못된 전제나 선입견을 확신처럼 지니는 이들을 대하는 것은 특별한 인내가 필요하다.
욥은 친구들의 행태를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욥17:3)
보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적 보증과 물적 보증이다. 물적 보증은 담보이고, 인적 보증은 보증인이다. 욥은 하나님께 증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 아시지 않느냐는 외침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시면 쓸데 없는 소리들이 잠잠할텐데 그렇게 해주지 않으시니 너무 답답한 것이다.
욥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욥17:4,5)하고 마음을 토로한다. 욥의 고난이 왜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나름대로 주절대는 자들은 마음이 가리워진 자들인데 그들의 자손들은 눈이 멀게 되리라고 말한다.
친구를 비난함으로 얻는 보상이 무엇일까? 돕지 않을 명분이 아닐까? 욥이 고난에 처해 있으니 친구라면 마땅히 도와야 한다. 하지만 돕기 싫으니까 욥이 잘못한 것이라고 정죄하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전에 욥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막상 자신들이 도와야 할 차례가 오니까 발을 뺀다.
욥과 같지는 않더라도 고난에 처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맥체인 성경읽기표 오늘 같이 읽는 본문인 고린도전서4장에서 바울이 말한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2-5)
사람의 말에 일일이 대응하고 흥분하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맡은 일에 충성한다. 주님은 다 아시고 궁극적으로 드러내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신실하게 살아가는 충성된 삶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