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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1 09:30
바룩의 기도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1,900  
네리야의 아들 바룩의 경우가 그렇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나는 그것이 올바른 이해라고 믿는다). 이 불쌍한 사람은 예레미야가 전한 보편적인 재앙으로 인해 참담한 심경이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바룩에게 하시는 말씀을 전해 준다.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렘 45:3). 바룩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재앙을 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많이 간구했다. 그 재앙을 생각할 때마다 바룩은 심히 억눌리고 가라앉았다.   
그러나 특별히 바룩은 도래할 이 환난기에 자신을 위해 평온한 상태를 구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룩에게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신다(5절). 이 구절에서 언급된 큰 일은 무엇이었는가? 어떤 승진이나 명예 혹은 부였는가? 바룩은 그런 야망이나 속된 욕망을 품을 수 없을 만큼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바룩은 단지 자신의 나라에서 조용히 살기를 원했을 뿐이다. 바룩은 이처럼 개인적인 특권을 누리기를 원했고, 자신을 위해 그 특전을 간구했다. 본문의 진술처럼, 그 간구는 바룩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바룩은 단지 보편적인 격동의 한가운데서 평온(quietem in communi inquietudine)하기를 구했다. 그런데 이것은 바룩이 살던 시대에 하나님이 품으신 보편적 섭리라는 관점에서는 큰 일이었다. 즉, 이루어 주기가 힘들고 곤란한(ardua et difficilia) 것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룩에게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라고 말씀하신다(4~5절). 바룩의 요청은 하나님 자신의 일반 목적에 반하는 것이며, 따라서 응답을 받기에는 너무나 큰 혹은 너무나 곤란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러서 하나님은 일반적 섭리가 도달할 범위 내에서 바룩을 충족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충족시켜 주지는 않겠지만,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고 말씀하신다(5절). 비록 바룩이 이처럼 요청하기에 충분한 근거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더라도 말이다.

토머스 굿윈, 믿음의 본질, trans. 임원주, vol. 2, (부흥과개혁사, 2013), 268–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