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를 택하는 순간 다른 하나는 저절로 단념해야 합니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동남아에서 보내기로 하면 유럽은 포기해야 합니다. 식사 메뉴로 한 식당을 정하면 다른 식당은 포기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하는 순간 다른 것들은 다 밀려나는 것입니다.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동남아도 가고 유럽도 가겠다면 휴가가 아니라 휴직이 될 것입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식당 두 곳을 동시에 가려고 한다면 어느 하나 제대로 맛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식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16:15)
사람 중에 높임을 받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타협안을 제시하고, 둘 다 가능하도록 머리를 짜냅니다. 손을 불에 넣으면 화상을 당하는 법칙처럼 두 주인을 섬기고자 하는 계획은 반드시 파멸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내 자신의 주인은 누구인지,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을 주인으로 따르고 섬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