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는 뒤늦게 논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욥이 한 말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 중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욥33:13)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로 반응하신다고 답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욥33:14)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심에도 사람이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 조차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교만을 막고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하심을 사람들이 계속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두 번째는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욥33:19)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욥의 세 친구들과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은 죄의 결과이며 형벌이라는 인과론적 관점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징계의 차원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크게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욥33:26)고 합니다.
고난의 원인에 대하여,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하여 엘리바스의 답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제의 끈을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볼륨을 줄이고 MUTE로 만들어 버리고, 이어폰을 꽂고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히 우리 영혼을 향해 반복하여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명이 소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