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고난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은 위로자가 아니었습니다. 욥의 고난의 원인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말하였는데,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한 일반론이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에 대하여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구나](욥16:2)하고 평합니다.
화해를 시킬 사람이 싸움을 부추기는 것과 같습니다. 욥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욥16:4)
욥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만일 입장을 바꿔서 본다면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욥16:5)말합니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 많은 사회입니다. 언론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자가 아니라, 상처받은 위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