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극심한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식들도 죽었습니다. 그런 욥의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친구들 가운데 맨 먼저 엘리바스가 한 말은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욥은 철저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 자신으로부터 소외, 친구들로부터 소외되었음을 탄식합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욥6:4)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궁지에 두셨다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을 때 두려움이 엄습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을 간직하여야 하지만 자신이 그럴 힘이 없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욥6:12) 자신이 돌이나 놋쇠처럼 버텨내지 못한다는 탄식입니다. 그렇다면 친구들이라도 어떻게 위로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욥6:21)
욥의 친구들은 욥의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욥의 편에 서서 욥을 동정하는 것은 욥처럼 자신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욥이 친구들을 향해 내 뱉는 이 탄식의 말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욥의 마음에 더욱 깊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욥의 소외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두려운 일을 본 적도 없으면서 겁내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