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최근게시물
 
작성일 : 12-05-30 11:36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글쓴이 : 서은성
조회 : 2,420  

다윗은 죽은 자를 선대하였다. 고인의 자손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다윗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악한 뜻으로 해석되어 자신에게 어려움을 가져다 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암몬의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다. 다윗은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같이 하리라](삼하10:2)하고서, 조문객을 보냈다. 그러나 하눈의 신하들은 이전에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일이 있어서 그에 대한 보복을 시작한 것으로 여겼. 사울왕 초기에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던 것을 상기한 것이. 때문에 다윗이 조문객을 보낸 것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윗은 이미 삼하9장에서 사울의 남은 가족을 조사해서 므비보셋을 선대하였다. 권력 유지를 위한 감시의 조치가 아니었다. 선의로 행한 것이었다. 죽은 사울의 유족 므비보셋을 선대한 것은 죽은 암몬의 나하스의 유족 하눈을 선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하눈은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으로 해석의 틀을 삼기 쉽다. 이것이 암몬의 잘못이었다.

 

선의를 악의로 해석하고 공격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삶의 실재다. 결국 암몬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선한 의도가 상대방에 의해 악하게 해석되어 어려움을 가져다 수도 있다는 때문에 아예 조문조차 행하지 말자고 주장해서야 되겠는가! 웃는 낯에 뱉으랴 말이 있지만, 조문객의 낯을 부끄럽게 만드는 현실이다. 선의가 선의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에 죄로 가득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게 하소서